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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세와현대_교육.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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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을 빛낸 인물-나라와 내지역의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한 인물들의 행적을 알고 세인의 귀감이 된 그들을 본받아 포항발전에 기여합시다.
  • 교육.문화 - 학교설립, 향토문화정착등 의지할곳 없는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꿈과 용기를 심어주는 일에 매진하여 지역의 문화발전에 많은 공헌을 한 인물
근세와현대 교육,문화 이름, 업적
이 름 업 적
이명석 영덕 출생, 경주 이씨로 호는 재생, 농촌에서 자랐다. 대구 교남학교 일본관서 미술학교를 나왔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고학으로 배움의 길을 걸었다. 해방이후 포항을 본향으로 삼고 포항예술인 총연합회를 결성하여 향토문화정착을 위해 노력하였고 포항문인 협회를 조직, 초대회장을 역임하였으며 문학강연회, 미술전람회 등을 개최해 지역문화창달을 위해 선도적역할을 했으며 6·25전쟁 후 지역 전쟁고아들을 위한 '선린애육원'과 '애린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여 의지할 곳 없는 사람에게 삶의 보금자리와 글을 가르치며 꿈과 용기를 심어주는 등 사회복지사업에 헌신 노력하여 정부로부터 '인간상록수봉황금문장'을 받았다.

일제치하에서부터 1970년대말까지 문화의 불모지로 알려진 이 지역에 향토문화의 싹을 틔운 개척자이며 포항시민의 정신문화 창달에 전 생애를 바쳐 주민들로부터 존경받고 있다.
금인석 본관은 봉화이며, 호는 운봉이다. 1921년 7월 19일 포항시 남구 장기면 방산리에서 태어났다. 동경상대 경제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89년 2월에는 동경대학에서 수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경력으로는 일본 계리사 시험에 합격하고,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하여 심계원, 검서관 및 과장을 역임하였다. 국회 재경위 및 예결산 위원회 전문위원(차관급)을 역임하였다. 계리사 고시위원(재무부)을 지내고, 재단법인 5.16장학회 상임감사,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 상임감사(부사장급)를 역임하였고, 경희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작가로서의 주요 경력은, 조선미술전람회 서도부 연4회 입선 (1935∼1938), 정부수립 5주년 기념전 대통령상 수상 (1953), 5.16 혁명기념 100일전 최고회의 의장상 (1961)을 수상하였다.

한일서예문화교류협회(1976∼1985), 한·일·중국제전(1976∼1985), 자유중국정부 초청작가 (1977∼1979 : 서예백일장 3회 참가, 행정원장 대상 3회 수상), 제 1 회 한국 미술 대상전 초대작가(1978), 경상북도 미술대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1983∼1985)을 지냈다.

저서로는 당시선, 삼체천자문, 추사소전 등이 있다. 평생을 공부하는 관료로서, 자신에게 엄정하였고, 꾸준히 노력한 이름높은 서예가였다.
김병권 청하에서 출생, 포항에서 살았다, 호는 이숙, 사람됨이 어질고 과묵하며 인내심이 강했다. 집안이 가난하여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독학으로 입신했다. 의사가 되기를 희망하더니 당시 총독부의 사검정시험에 27세의 젊은 나이로 합격했다. 어렵고 불우한 사람을 돌봐주며 의원을 개업한 흥해에서 인술을 베풀었다. 교육에 관심을 쏟아 일개면에 일학교를 설립케 되어 있으나 당시 흥해, 달전, 곡강 3개면 가운데 곡강면에는 학교가 없었다.

혼자 서울에 가서 총독부 학무국장과 설전을 벌인 끝에 곡강국민학교 설립을 약속 받았다. 그 후로 학교장학회를 조직하여 후세 교육에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또한 학교 지정의원으로 건강과 보건향상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영일군보건지료소장, 경북의사회 대의원, 농민 협동 조합장, 대송면 포항지구공의를 역임했다.
정봉섭 본관은 영일이며, 흥해읍 옥성리에서 출생했다. 천자고만하여 인정이 많고, 남을 도와주는 일에 앞장섰다. 대구농림을 졸업한 후 일본에 유학하여 동경척식대학예과를 거쳐 상학부를 졸업하였다. 1948년 흥해중학교 설립당시 교감으로 취임한 후 교육계에 투신, 1950년에 교장을 역임하면서 많은 후진을 양성하였고, 경상북도 교육위원으로 활약하면서 흥해고등학교 설립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학교 발전에 많은 공적을 남겼다.

만년에는 영일문화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일월문화제, 제남헌이건, 영일민속박물관개관 등 지방문화발전에 공헌하였다.
김경섭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났다. 호는 소오, 포항사람이다. 1939년 평양 의학강습소에서 2년간 수학한 후 조선총독부시행 의사 검정시험에 합격 1941년 충북 괴산군 공의로 재직하다가 1949년 포항으로 이거하여 동인의원을 개원 이 지방 의학계에 명성을 떨쳤다.

경제적 기반이 조성됨에 육영에 뜻을 두어 포항 중·고등학교 기성회장을 역임하였고, 5.16 군사혁명 이후에는 재건국민운동 포항시 지부장에 취임하여 재건 학교설립 등 자조 자립 협동하는 새마을 정신을 몸소 실천하며 사회봉사활동에 주력하였다. 1968년 동인교육재단을 창립 재단이사장으로 취임하여 대동중학교 설립 후 1972년 대동고등학교를 설립하여 후배 교육에 전력하였다. 빈부격차 없는 교육평등이 지론이었고 함께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으로 학교교육에 힘썼다. 1967년 포항로타리클럽회장, 포항시행정자문위원장, 포항시 새마을 협의회장직을 역임하면서 의술과 교육 등 사회봉사활동에 공헌하였다.
박일천 흥해 출생, 성품이 호탕하고 청빈고매 하였다. 일본청산학원을 졸업, 1946년 대한노총 포항지부장을 역임하고 1952년 민선 포항시장에 당선 혼란기 자치행정 책임자로 그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였다. 바닷가 불모지를 개발하기 위해 포항제철유치위원회 부회장으로 선도적역할을 맡아 철강도시로 발전하는데 크게 공헌하였으며 지역 발전협의회 초대회장, 포항공대설립 추진위원장을 역임하였다.

남다른 애향심으로 고향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향토사 연구에 몰두하여 1968년 일월 향지를 발간하였고 포항시사 편찬의원, 영일군사 편찬위원, 경상북도 향초사 연구협의회 회장, 포항·영일문화재 보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포항의 행정과 경제기반 포항공과대학 유치, 향토사 연구 등 지역발전과 향토문화 창달에 크게 공헌한 향토의 큰 인물로 세인의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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