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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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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_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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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을 빛낸 인물-나라와 내지역의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한 인물들의 행적을 알고 세인의 귀감이 된 그들을 본받아 포항발전에 기여합시다.
  • 효자 -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고 모범이 되는 인물
조선시대 효자
이 름 업 적
하영식 구룡포 구평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향리의 모법이 되었을 뿐 아니라 모친이 병환으로 10년동안 앓아 눕게되자 명의와 신약을 구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였고 바다를 앞에 두고 있는 해안지역이라 엄동설한에도 얼음을 깨고 고기를 잡아 반찬으로 대접하였다. 꿩이 좋다는 말을 들었으나 구할 길이 없어 고심을 하면서 낚시를 하던 중 난데없이 꿩 한마리가 물에 빠지는 것을 보고 물에 뛰어 들어 꿩을 정성껏 장만하여 어머님께 드리니 병환이 완퇘되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였거늘 하늘이 공을 도운 출천지효자였다. 조선조 고종 21년(1884)에 진주하씨 문중에서 비를 세우고 선효각을 건립하였다.
배두여 어려서부터 천품이 온후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를 극진히 섬기었다. 아이 네살 때의 일이었다. 부친이 병이 들어 자리에서 신음하는 것을 못내 안타까워 했는데, 하루는 어머니가 강가에 빨래하러 간 사이에 아버지 병세가 갑자기 악회되어 숨을 몰아 쉬게되었다.

그 때 난데없이 회오리 바람이 몰아쳐 문이 닫히는 순간 손가락을 다쳐 피가 흘러 내렸다. 그녀는 어린 마음에도 그 피를 아버지 병환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 나머지 아버지 입에 갖다대고 '아버지 호 해줘!'하며 울면서 말하니 손가락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저절로 병든 아버지의 입에 떨어졌다.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아버지의 병세가 차츰 회복되어 건강을 찾게 되니 이 사실이 이웃에 전해지자 하늘이 내리신 효녀라 하며 칭찬이 자자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흥해군수는 크게 감탄하여 상을 내리고, 1935년 비를 세우게 하고 정려하였다. 그 후 평해 황씨 가문에 출가하여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아침 저녁으로 문안을 드리니 효부로도 널리 알려져 배씨 문중에서는 비를 세우고 황씨 문중에서는 비각을 세웠다.
홍순필 기계면 화대리 경주 김씨 가문에 출가하여 홀로 계시던 시어른을 지극한 효성으로 봉양하였으며, 특히 부친이 맹인이면서도 술을 좋아하므로 수년 간 매일 같이 등에 업고 면소재지까지 내려와서 맛있는 음식을 사 드리고 해가 지면 다시 등에 업고 집에 모시고 가는등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향인 전체가 칭송하게 되자, 나라에서 효부상을 내리고 현모양처로서 타의 귀감이 되었다.
허기 본관이 김해로 장기면 금곡리 사람이다.어릴 때부터 효심이 지극하여 18세에 부친상을 당함에 묘소 옆에 움막을 지어 조석으로 묘를 지키며 효성을 다하였고, 어머니에게도 항상 공손하게 모시어 자식의 도리를 다하여 왔다.

부친상을 당하였을 때는 나이가 어려서 묘소를 길지에 드리지 못하였음을 가슴아파해 오던중 뒤늦게 나마 예를 갖추어 다른 곳에 이장한 후 제사를 드리니 술 석잔이 모두 말라 없어지므로 이상히 여긴 나머지 부친 기제시 유식지경에 합문소퇴한 후 고개를 들어보니 돌아가신 모친이 생시와 같이 제상에 앉아 계시어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놀란 일이 있었다고 한다.
장인풍 공은 어려서부터 효심이 지극하고 성품이 온후하여 다륹 사람을 희롱하거나 농담하는 일이 없었다.여섯살 때 잘못을 저질러 어머니께서 노하시어 매를 들고 쫓아오자 잠시 도망치다가 뒤돌아 보니 어머니가 숨이 가쁘게 따라오시는지라 '어머니 숨이 가쁘신 것 같으니 천천히 오십시오.'라고 말하여 어머님의 노여움을 풀게한 일이 있으며, 공이 열두 살 되던 해에는 집이 가난한 데다가 어머니마저 병환으로 자리에 눕게 되자 소년 가장 노릇을 하였을 뿐 아니라, 한 겨울에 생선을 먹고 싶어하므로 고심 끝에 하늘을 우러러 보며 울음을 터트렸더니 갑자기 얼어붙은 강물 속에서 물고기가 얼음위로 솟아오르므로 그 고기를 잡아 시탕하고, 하늘에 기도하였더니 신선이 나타나 손가락으로 앞산을 가르키며 저곳에 약초가 있으니 그것을 캐어 닳여 드리라고 하기에 그대로 실행 하였더니 병이 완쾌하여 오래토록 장수하였다고 한다. 이 소문이 고을에 널리 알려져 1927년 장기면 양포리에 비를 세우고 정효각을 건립하였다.
김사민 공은 어릴 때부터 효심이 지극하더니 15세 때 부친이 병환으로 자리에 누어 있을 때 의원이 진맥을 하고 두꺼비를 약으로 쓰면 병이 완쾌될 수 있다고 하므로 정성을 다해 하늘에 기원하니 꿈속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추운 겨울철이지만 내가 시키는대로 하면 두꺼비를 구할 수 있다고 하였다.

노인이 시키는 대로 하였더니 땅속에 잠자고 있는 두꺼비를 구하게 되었다. 애써 구한 두꺼비를 시탕하였더니 부친의 병이 완쾌되었으며 그 후 부친이 다시 병환에 들게 되었을 때는 단지주혈하여 연명시킨 일이 있었다. 공의 효행이 널리 알려져 조선조 광무 2년(1898) 비를 세우고 장기면 임중리 정효각을 세웠다.
최학진 효자 최공은 본관이 월성으로 어려서부터 성품이 어질고 너그러우며 효성이 지극하여 정성껏 부모를 섬겨 천수를 누리게 하였다. 1927년 공의 효성을 기리어 장기면 산서리에 비를 세우고 정효각을 건립하였다.
효부
곡강최씨
허기의 아들 허식의 처로서 허씨 집안에 시집온지 8년만에 남편을 여의고 3년동안 머리를 빗지 아니하고, 시어머니에께 정성을 다하였다. 시모가 이질에 걸려 달포가 넘도록 자리에 누워 계시므로 주야로 옷도 벗지 않고 잠도 자지 않으면서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변을 손수 받아 처리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는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였다.
효부
월성최씨
허기의 아들 허온의 처로서 천품이 온화하여 허씨 가문에 시집온 후로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다하더니 시아버지가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자 직접 변을 받아내며 변의 맛을 보아가면서 병환의 상태를 점검하며 간호하였다. 겨울이 닥쳐 찬 바람이 불고 눈이 하얗게 쌓였는데 시아버지가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나 고기를 팔러 다니는 상인이 없어 구할 길이 없어 길거리를 헤매다가 돌아오는데 기러기 한 마리가 날아와 도로변에 앉으므로 쫓아가서 손으로 잡아 저녁 반찬을 해 드리는 등 효성이 지극하여 고을 전체가 칭송이 자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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