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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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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리 백계당

  • 향토유적, 비지정 포항시 향토문화유산 유형 2016-4
  • 대전리 백계당은 내연산 산신인 \'할무당 할매\'를 모시는 신당이다. 현 위치로부터 위로 약 2km 떨어진 내연산 문수봉과 삼지봉 사이의 할무당재에 있던 것을 1928년에 이건하였다고 한다. 이건 이전에 3차례(1892, 1901, 1914) 중수한 기록이 있지만 창건 기록은 없다. 지금의 신당은 1960년 중건한 목조건물로 맞배지붕에 함석을 얹었다. 내부에는 할무당 석상이 있으나 제작연대는 알 수 없다. 1901년 쓰여진「백계당중수기」에 신당
 

중명리 정사도 유허비첨부파일 있음

  • 향토유적, 비지정 포항시 향토문화유산 유형 2016-3
  • 중명리 정사도 유허비는 고려 공민왕 당시 이곳에서 많은 제자를 가르쳤던 정사도 선생을 기리는 비석이다. 정사도의 본관은 영일, 호는 설곡이다. 후손 정성검이 찬한「문정공설곡정선생유허비중수기」에 의하면 정사도는 유허비가 세워진 원촌리(현 중명리)에서 태어났으며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고향인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정사도는 오천서원에 배향된 인물로서 역사적, 학문적으로 우리 지역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여 인물사적 측면에서 널리 알려야 할
 

화진리 구진마을 앉은 줄다리기

  • 향토유적, 비지정 포항시 향토문화유산 무형 2016-1
  • 화진리 구진마을 앉은 줄다리기는 음력 정월 대보름 오전에 행해지는데 앉아서 줄을 당긴다고 하여 \'앉은 줄당기기\'라고도 한다. 좌우 다리가 각각 네 개인 \'기\'(\'게\'의 방언)를 닮았다고 하여 \'기 줄당기기\'라고 한다. 해안 지역 주민들에게 게의 붉은 색과 날카로운 발은 각각 벽사의 색과 형상, 그리고 무수한 알은 다산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두 가지 명칭 중 마을 주민들은 \'앉은 줄당기기\'란 명칭을 주로 사용하며, 줄은 흔
 

미현리 부운재첨부파일 있음

  • 향토유적, 비지정 포항시 향토문화유산 유형 2016-2
  • 미현리 부운재는 기계유씨의 시조인 신라아찬 유삼재공의 영묘를 수호하기 위해 세운 재궁으로 1710년(숙종 37)에 부운암 16칸을 건립하면서 비롯되었으며 1920년에 정사 12칸과 낭무 18칸의 목조와가 3동을 개건하여 부운재라 개칭하였다. 그 후 1944년과 1959년, 1979년에 각각 증, 개축과 중수가 이루어졌으며 1985년에는 대대적으로 개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유형적인 측면에서 건물의 외형은 많은 변화로 인해 원래의 모습이 퇴색
 

원리 정몽주 유허비

  • 향토유적, 비지정 포항시 향토문화유산 유형 2016-1
  • 원리 정몽주 유허비는 고려시대 충신인 포은 정몽주 선생의 충절을 기리고자 이 지방 유생들이 건립하였다. 정몽주는 고려 충숙왕 복위 6년(1337) 12월에 외가인 경북 영천군 임고현 우항리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일향교지』에는 정몽주가 영일정씨로 영일 오천 문충동에서 태어났다고 되어 있다. 이 유허비는 원래 오천읍 구정리에 오천서원과 함께 있었으나 서원이 오천읍 원리로 이건하였고 이후 유허비도 현재 위치로 이건하였다. 유허비는 비
 

정교보유택불망비첨부파일 있음지역정보

  • 향토유적, 비지정,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용곡리
  • 자는 중익(仲翊), 호는 농은(農隱). 고려 추밀원지주사 정습명의 후손이며 영남충의단에 봉향된 사의공 정인헌의 현손으로 인조 26년 흥해 동부리에서 출생하였다.공은 기국이 큰 인물로 자기 것을 털어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여 큰 흉년이 들면 곳간을 열어 사람들을 구휼하였다. 강북(江北)일대가 물대는 것이 어려워 큰 들이 황폐하여 수로를 개통하려고 하였지만 큰 바위절벽이 수로를 막고 있어 어려움을 겪자 자신의 재산을 내어 여러 고을의 석공들을 모아
 

향토유적 노계시비첨부파일 있음지역정보

  • 향토유적, 비지정, 경북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리
  • 입암서원 도로건너편 아래에는 2001년 11월에 세운 노계 박인로의 시비가 있다. 가로 3m, 세로 1.2m,  높이 2.5m의 규모로 세워졌는데 까만 오석에는 노계의 시와 그의 업적을 기리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은 2001년 노계시비 건립위원회에 세워졌다. 시비의 글은 문인협의 포항시지부장 김일광씨가 지었으며 글씨는 학정 이돈홍, 조각은 김두환씨가 맡아 제작하였다. 입암 29곡은 노계 박인로(1561~1642)의 작품으로 입암의
 

향토유적 고인돌첨부파일 있음지역정보

  • 향토유적, 비지정,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일월로 66
  • 선사인(先史人)들이 남겨 놓은 유적 중 가장 특징있는 것이 고인돌로서 선돌(立石)과 더불어 거석문화(megalithic culture)의 일환으로 생각되는데, 그 기원은 알 수가 없으나 고인돌의 분포상황이나 구조로 보아 시베리아에서 전해진 석상분(石箱墳)이 우리나라 서북지방에서 고인돌로 발전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외관상으로 보면 유럽 지중해 연안에 퍼져있는 dolmen과 흡사하여 한반도의 고인돌을 돌멘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그 기능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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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 : 자치행정국 > 문화예술과 주무관 김규빈 (☎ 054-270-22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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